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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인상을 남긴 후에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항했다.

 

그러기 위해 체크아웃 하려고 했는데 숙소 직원들이 자고 있었다.

책상에 엎드린 게 아니라 아예 바닥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조금 난감했는데 그래도 깊이 잠들지는 않은 건지 금방 깼다.

그래서 체크아웃을 하는데 갑자기 비자 얘기를 하였다.

비자 같은 건 없는 지라 없다고 하고 나갔다.

 

이번에도 우버를 타고 공항까지 갔다.

 

 

 

아침을 안 먹어서 쌀국수랑 커피를 시켰다.

쌀국수는 별 특이한 건 없었는데 커피가 특이했다.

저게 드리퍼라고 하는 건가 본데 저걸로 내려서 마시는 걸로 기억한다.

 

후에에서 1시간 정도 가서 호치민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우버를 타고 숙소로 갔는데 뭔가 좀 허름한 곳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차에서 내려서 가니 여기로 가면 진짜 숙소가 나오긴 하는 건가 싶었다.

솔직히 하노이나 후에도 깨끗한 느낌은 아니였지만, 여긴 좀 더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하여 숙소를 찾아 체크인을 하고 방에 갔는데 웬 불청객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오자마자 바퀴벌레가 있어 기겁하여 숙소직원에게 번역기로 바퀴벌레가 있다고 했다.

다행히 잡긴 했지만 영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직원이 방을 바꿔줄까 얘기도 했으나, 일단은 그 방을 계속 쓰기로 했다.

 

 

그리고 호치민 관광을 시작했다.

저건 어떤 공원을 지나가면서 찍은 거 같다.

 

 

맨 처음 간 곳은 독립궁이다.

궁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궁전이 아니라

공산 국가에서 인민 궁전 하는 식으로 붙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설명에서 웃긴 점은 정작 저 건물을 처음으로 사용한 게 

자본주의 진영인 남베트남이라는 점이다.

 

 

회의실과 연회장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상화이 상화인지라 화려한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연회장 사진에 걸린 공산당 깃발과 베트남 국기에서 보듯

남베트남이 졌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나마 사치라고 볼만한게 저 도자기 정도였다.

나라의 역사 대부분을 전쟁과 함께했으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2층에서 보면 분수가 보이긴 했다.

베트남의 더위를 식힐 수 있어 좋아보였다.

 

 

 

그래도 총통 관저실로 쓴 곳은 깨끗해보였다.

다른 나라도 이렇게 붙어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역시도 전쟁 때문에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외 서재랑 식당같은 다른 시설들도 봤다.

그런데 극장도 있는 건가?

 

 

2층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저걸 친 듯 하다.

그리고 헬기장이 있어서 관제 시설같은 것도 있었던 거 같다.

 

 

 

사실 위의 시설들은 그저 그랬는데 밑으로 내려가 벙커를 보니 전쟁 때의 긴박함이 느껴졌다.

지도들과 표들이 뭘 나타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렇게 전세를 뒤집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엔 졌다는 거다.

 

 

철제 책상과 알 수 없는 군용 기계들 덕분에 더 삭막한 느낌을 받았다.

50여년 전 쯤에 군인들이 열심히 뛰어다니지 않았을까 싶었다.

 

 

유사 상황시를 위해 총통이 자게끔 만든 듯한 침대도 있었다.

어쩌면 저런 게 있었다는 거 자체가 상황이 그만큼 안 좋았다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부엌 구경도 했는데 신기해보이는 것들도 있었지만, 

아까 벙커의 연장선상으로 보여 요리사가 아닌 취사병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프와 벤츠 차를 보았다.

저런 차들을 전시한 건 많이 봤지만 패자의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좀 느낌이 달랐다.

 

 

마지막으로 특별전시회 같은 곳으로 갔는데, 

RATM의 앨범 이미지로도 유명한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 사진과

남베트남의 초대 총리였던 응오딘지엠의 처형 사진이 기억에 남았다.

 

독립궁 구경을 마치고 전쟁박물관으로 갔다.

독립궁에 갈 때만 해도 비가 안 왔는데 전쟁박물관으로 가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하필 현금도 없어서 다시 ATM을 찾아서 현금을 뽑아야 했다.

그래서 박물관에 들어가니 가방 속도 젖었고 양말도 젖었다.

 

 

박물관에는 남베트남이 받은 듯한 미군 비행기들이 있었다.

 

 

1층에는 세계 각지에서 베트남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들과 관련된 사진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와 북한의 사진도 있었다.

북한은 북베트남을 지지하는 모습을 찍었고, 

우리나라는 전쟁 반대 전단을 뿌리는 모습이 찍혔다.

 

 

2층에는 베트남 전에 사용한 무기들과

전쟁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보면서 전쟁의 잔흑함을 다시 되새겼다.

 

 

전쟁이 남긴 참흑한 사진을 보던 도중, 네이팜탄에 공격당한 후 도망가는 소녀를 찍은 유명한 사진이 보였다.

소녀의 절규라고 하는 이 사진은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사진의 소녀는 다행히도 살아남았으나

등에 3도 화상 상처를 입고 거의 50년 간 치료를 받은 끝에야 완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유명한 사진인 사이공식 처형 사진도 있었다.

유튜브에  영상으로도 있는 이 사진에서  저 총을 든 사람은 위협이 아니라

실제로 방아쇠를 당겨서 오른쪽의 사람을 죽였다.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했을 무기들도 보였다.

그 때는 그냥 무기로만 봤는데

지금 보니 저 무기들이 위의 사진과 같은 피해자들을 만든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 제일 심했던 건 고엽로 인한 피해였다.

고엽제 피해는 뭐 들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까 더 끔찍했다.

 

 

우리나라 역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었고, 

고엽제 피해를 입은 군인들도 있었기에 

우리나라 군인 사진 및 관련 자료도 있었다.

 

 

이런 걸 보면서 아직까지도 전쟁하자고 하는 인간이 있으면 

그건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흑했다.

 

 

전쟁은 누구나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군 측 사상자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취재 중에 목숨을 잃은 기자들 사진도 있었다.

 

 

보는 것으로도 몸서리 치는데, 실제로 겪은 사람들은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괜히 PTSD가 온다는 게 아니였다.

 

 

 

우리나라 군인이 했을 거라고 의심하는 전쟁범죄들도 있다고 한다.

찾아보니 실제로 우리나라 법원에서 우리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는데, 

실제 전쟁 상황을 보니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전쟁을 하면 결국엔 우리만 죽는 게 맞을 것이다.

 

 

전쟁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비가 그쳐있었다.

그래서 둘러보니 아까 전투기 말고도 탱크랑 헬기들도 있었다.

 

 

그리고 호치민 노트르담 성당도 갔는데 보수 중이라 그냥 외부만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녁으로 쌀국수와 오징어 구이 요리를 먹었다.

다른 곳에 비하면 좀 비싼 감은 없지 않아 있었으나,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갔길래 갔다.

 

 

마지막은 호치민의 밤사진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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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콜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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