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미 10년이나 지나버린 20세기를 얘기하게 되는 건 우습지만, 이 100년 동안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은 누구일까.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각자 다를 것이다. 100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분야이든 막론하고 영향력 자체만으로 20세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우친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라고 생각한다.
그의 제3제국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피비린내나는 세계대전이 또 다시 시작되었으며, 
전쟁 종결과 동시에 소련의 공산주의 세력과 미국의 자본주의 세력과의 대치가 나타나게 된 냉전 구도가 나타났다.
또한 (독일은 아니지만)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핵이 사용되면서 우리에게 핵, 원자력의 가능성을 제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은 아니지만 스페인 내전 당시프랑코의 스페인 우파군을 돕기 위하여 보낸 폭격기가 게르니카를 폭격하면서
피카소가 게르니카란 작품을 만들게 된 사실도 있다.

이러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그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와 거의 동의어격인 '나치'라고 할 수있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날로부터 6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그의 사상을 노래하는 이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나의 투쟁' 번역판 책에서는 국가사회주의란 단어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가사회주의가 의회주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민주적인 단체 탄압을 반대했지만
히틀러의 나치나 그와 동맹이었던 무솔로니의 파시즘은 밑에도 나오겠지만 의회주의를 부정적으로 봤으며 민주적인 단체들을 부정적으로 봤다.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에도 나왔지만 그는 다수결을 부정하였으며 한 명의 뛰어난 인간이 민족의 국가를 이끌어 나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이면서도 다민족으로 구성된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싫어하였다.
또한 그는 공산주의자(책에서는 마르크스주의로 나와있다.)들을 싫어하였는데  이는 그가 그토록 혐오했던 유대인들이 주장했고 
이들의 주장이 독일 민족의 정체성을 뺏고 유대인의 승리, 시오니즘을 성사시키기 위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유대인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유대인을 들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그는 적고 있다.
그렇지만 사설 신문에서나 예술에서의 독일 민족을 깎아내리고 타민족들을 칭찬하는 자들이 
유대인이란 것을 안 순간부터 유댄인을 극도로 혐오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재능은 재산이나 가문에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소질로 결정된다고 믿었으며, 이 소질이 바로 인종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민족주의 국가에서의 교육은 계급에 무관하게 재능있는 자를 그에 따른 길로 인도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급에 무관해야한다는 그의 생각은 사람은 일의 종류가 아닌 자세와 성과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쓴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국가사회주의의 노동조합은 마르크시즘의 계급투쟁기관이 아닌 단지 직업대표기관의 역할만 해야한다는 얘기로도 알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오직 자세와 능력만으로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서 그들을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그는 국가를 인종으로서의 인간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를 유지하고 교육시켜 민족을 위해 개개인의 생명을 언제 어디서나 바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그 역할이다.
또한 그의 논리는 협력에 관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초대된 사람은 오직 최고 능력을 가진 한 사람이다.'란 말을 통하여 공동전선을 부정했으며
그로써 그가 극도의 엘리트주의임을 알 수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행동파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그의 관점은
'이성이 입을 다물과 폭력이 마지막 결정을 내릴 경우 공격이 최고의 방어수단'이라는 문구에서도 알 수 있다.
당에 관하여 서도 그는 책에 기술하였는데 
아무리 강령과 대치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변경하지 않고 유지하여야 나중에 있을 의심에 여지까지 없엘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당의 상징인 문장의 중요성도 역설하면서 그가 만들어 낸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가 들어간 기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본래 화가지망생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문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그는 종교적인 갈등이 민족주의 투쟁에 포함되는 것을 큰 해악으로 여겼는데 이는 다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민족주의 운동에 종교적인 투쟁의 위기에 넣은자를 국제주의적 입장의 공산주의자보다 더 싫어한다.'

그렇지만 한가지 의문점도 있는데, 반유대주의보단 많이 나타나있지는 않지만 
나치기에 하켄크로이츠를 넣은 이유로 아리아 인종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것은 자신의 민족만이 구원받으리라고 믿은 유대교(예수는 모두를 구원한다고 했다기에 유대교의 메시아는 아니라고 한다.)와 똑같은 논리가 아닌가.
결국 그는 그가 그토록 싫어하였던 유대적 논리에 의해 패망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복자가 방어자를 정복하려면, 항상 방어자보다 독창적이어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지만, 결국 그는 독창적이지 못 하였다.


나의투쟁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 사회사상 > 사회사상일반
지은이 A.히틀러 (홍신문화사, 2006년)
상세보기



반응형
Posted by 애콜라이트
l

free coun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