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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난 뒤 운전사가 나를 데리러 왔다.

바로 따라 나가서 차를 타고 갔다.

 

 

시골길 가는 느낌이라 지나갈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샤흐리삽스로 가는 도중에 테쉬크 토쉬라는 곳에 내렸다.

그냥 경치좋은 곳인 줄 알았는데, 여기가 원시시대 네안데르탈인의 유적들도 있는 것 같았다.

탁트인 곳에 돌무더기들이 많이 있어서 좋긴 좋았는데, 

돌에 쓴 낙서는 문화재든 자연이든 훼손한 거라서 씁쓸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보이는 황량함은 우리나라에선 그닥 볼 수 없는 거라서 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있다보니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더 머물렀어야 했다.

 

그러고보니 여기 아메리칸 인디언 복장을 한 사람도 있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인지 관광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신기하긴 했다.

 

 

차는 다시 또 머나먼 길을 갔다.

말도 안 통하고 내가 사교적인 성격도 아닌지라 많은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경치를 보느라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다.

 

 

중간에 경치 좋은 곳이라고 운전사가 내려서 사진 찍으라고 해서 찍었다.

이런 경치를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질 수 밖에 없었다.

일할 때나 쉴 때나 모니터만 보고 있다가 이런 경치를 보니 뇌에 있던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었다.

 

다 찍고 나니까 기사가 나랑 사진을 찍짜고 해서 몇 장 같이 찍었다.

내 사진도 찍어주었는데 찍을 때는 몰랐는데 보니까 포즈가 너무 병신같았다.

근데 나랑 같이 찍은 사진은 어디다가 쓰려는 건지 모르겠다.

어글리 코리안 같은 걸로만 쓰지 않으면 좋겠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집들을 보면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산악마을을 실제로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앱으로 고도를 확인해보니 1300m에서 1500m까지 가는 걸 확인하였다.

 

 

그렇게 2시간을 달리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샤흐리삽스에 도착했다.

걸어가다보니 샤흐리삽스에서 가장 유명한 아크 사라이 궁전이 보였다.

기사는 나를 입구까지 데려다준 다음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이 궁전은 티무르가  1380년에 건설하여 1404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궁전은 16세기 부하라 칸국의 압둘라 칸 2세가 파괴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이후로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는지 잘 보존이 되었고 

우즈베키스탄이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이 되었다.

 

 

티무르 동상도 있어서 찍었다.

근데 이 동상을 만든 사람은 독재자였던 이슬람 카리모프였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박정희 때 만든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근처에 있는 마드라사로 들어가서 전시한 유물들을 보았다.

역시나 마드라사라 책과 글씨들이 ㅇ있었다.

그리고 다른 곳도 그랬지만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명소들도 소개해놓았다.

 

 

그리고 페르시아 문화권답게 양탄자들도 있었다.

또한 옷들도 있었는데, 지금보니까 저 옷들 우리나라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옷과 비슷해 보인다.

 

 

마드라사 구경을 마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서원같은 곳을 박물관으로 쓴다는 거니까 좀 특이했다.

 

 

일부러 저 구도로 맞춘 것 같은데, 아크 사라이 궁전 사이에 티무르 동상이 있는 게 멋져서 사진을 찍었다.

티무르가 자신의 제국을 둘러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현재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제국을 멸망시킨 우즈벡인이라는 게 재미있긴 하다.

그리고 고크 굼바스 사원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고크 굼바스 사원으로 갔다.

사원은 울루그 벡 술탄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관들의 주인은 누군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살아 있을 때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다.

 

 

밖에 나와서 다시 마드라사를 구경했다.

이슬람교가 주류인 다른 나라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즈베키스탄은 이런 마드라사가 많은 것 같아 학구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도루스 사오디트 묘로 갔다.

여기에는 티무르의 맏아들인 자혼기르와 오마르가 묻혀있다고 한다.

이 두 아들은 티무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특히 자혼기르는 20살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아무리 대제국을 건설하였다고 한들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는 참적의 슬픔은 어쩔 수 없었을 것 같다.

 

 

샤흐리삽스 구경을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1시간 정도를 달렸다.

눈덮인 산을 따라 달려가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었다.

 

 

차는 산에 있는 한 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소고기랑 양고기를 먹었는데 괜찮았던 것 같다.

근데 여기가 어디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가면서 이런 요리가 있는지 물어보길래 보여줬는데, 

하필이면 돼지수육을 보여줘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새 다시 숙소까지 왔다.

샤흐리삽스 일정도 이렇게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나의 여행 중 대부분은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인데, 

이렇게 드라이빙 하는 것도 즐거운 여행이었다.

 

사실 부하라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했지만

샤흐리삽스 자체는 부하라나 사마르칸드에 비해 별거 없기는 했다.

그렇지만 거기로 가는 길 자체 만으로도 구경하러 가는 충분한 이유가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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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콜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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